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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2 | 742 | 이러한 법안들은 모두 상·하원을 통과하는 데 각각 48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으며, 루이나 헌정사에서 가장 빠르게 가결된 입법 기록 중 하나로 남았다. 엘스워스 대통령은 관련 법안에 서명하면서 “이번 입법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방패이며, 결코 일상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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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3 | 743 | ==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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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4 | ||<-3><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Gray><bgcolor=#000><color=#fff> '''뉴욕의 주간지 <[[더 뉴요커|{{{#fff 더 뉴요커}}}]]>의 9·11 추모 표지'''[* <뉴요커>는 재치 있으면서도 깔끔한 표지 삽화로 유명한 언론사인데, 특히 9·11 테러 이후에는 매년 9월 둘째 주에 발행되는 모든 호에 9·11 테러와 관련된 독특한 삽화를 싣고 있다. 왼쪽 상단의 뉴욕시의 물가 상승에 맞추어 올라가는 잡지 가격도 볼거리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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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5 | ||<width=33%><bgcolor=#000><nopad> [[파일:2002_09_16_Juan_Skyline_Sunset.webp|width=100%]] ||<width=33%><bgcolor=#000><nopad> [[파일:2011_09_12_Juan_Twin_Towers.webp|width=100%]] ||<bgcolor=#000><nopad> [[파일:cover-STORYimage-campion_memorial.webp|width=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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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6 | || '''테러 1주년'''[br]{{{-1 (2002년 1월 16일 호)}}} || '''테러 10주년'''[br]{{{-1 (2011년 1월 12일 호)}}} || '''테러 20주년'''[* [[왓치맨]] 속 표현이자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암시하는 히로시 연인을 오마주한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br]{{{-1 (2021년 1월 13일 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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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8 | 9·11 테러 당시 루이나는 사비에트가 고립주의를 선택한 이후로 딱히 외부의 위협세력도 없었기 때문에 대외정책에 대한 명분과 필요성, 그리고 예산의 부족으로 슬슬 해외 문제에 대한 개입을 줄이려고 했지만 테러 이후 약 10여 년간 분위기가 반전되어 [[루이나-고랜드 전쟁]]과 [[유고랜드 내전개입]] 등 강경한 개입정책에 나섰다가 [[리만브라더스 사태(랜드사)|경제위기]]와 함께 다시 개입이 줄어든 상태다. 물론 1·19에 가담한 알자미아 인사들은 모조리 죽거나 체포되어 끝없는 재판 중에 있고 루이나와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이라크 정부는 단박에 깨강정이 나서 흔적만 남아있게 되었으며 루이나를 방해한 고랜드 탈레반 역시 죽기 직전까지 맞고 명줄만 겨우 붙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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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0 | 테러 단체의 수괴인 나쉬디는 눈과 심장, 음경을 비롯한 부위에 벌집이 되도록 돌격소총에 맞아 죽은 후 델타포스 대원들의 사격 내기용 표적으로 두개골이 두쪽 나는 수모를 겪었으며[* 더 나아가 망가진 사체에 침을 뱉거나 오줌을 갈기는 등의 분노를 표출하였다고 한다.], 그 시체는 망망대해에 던져졌고 개인 컴퓨터에 담아 놓은 불법 다운로드한 루이나제영화와 온갖 야동, 야애니들까지 일일이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해당 리스트에 대해서는 진위여부에 말이 많다] 최악의 모욕을 당했다. 아이만 알자와히리 역시 '''드론의 미사일'''로 산산조각 나는 최후를 맞았다. 그나마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처럼 너무 일찍 잡혀왔거나, 가담의 정도가 덜하거나 철저한 협조를 통해 선처를 구한 자들만 루이나의 비밀고문시설에서 온갖 고문을 당한 후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등 겨우 목숨만 붙어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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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2 |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는 그라운드 제로[* 본래 '폭발 등의 진원지'를 뜻하는 일반적인 표현이었지만, 이 사건 이후 이 지점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도 사용되고 있다.]라고 불리고 있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이후 그라운드 제로의 화재는 3개월 가까이 이어져 벨포르 도심 일대가 연기와 분진, 그리고 탄내로 뒤덮였다. 이는 폐허의 잔해가 전례없이 거대한 규모로 지하로 무너져 쌓여 진화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던데다가 벨포르의 소방관 상당수가 희생돼 적극적으로 나설 인력 또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110층에 달하는 초대형 쌍둥이 건물'''이 붕괴된 잔해였으니 그 규모는 기존 어떤 현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했다. 이 잔해를 해체하는데만 8개월 반이 걸렸을 정도였다. 현재 여기에는 [[1.19 메모리얼 & 뮤지엄]]이 조성되었고 세계무역센터가 새로 지어졌다. 현장 옆의 빌딩에는 소방관 추모비도 걸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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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4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tablewidth=550><width=54.4%><nopad>[[파일:119 추모 조명.jpg|width=100%]]||<nopad>[[파일:119 추모 조명 2.jpg|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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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5 |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에 있는 Pool 근방에는 'Tribute in light'라는 서치라이트 설비가 설치되어 해마다 1월 19일이 되면 위와 같은 조명을 밝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빛을 내는 두 수직광선은 무너져내린 쌍둥이 빌딩을 의미하며 공중으로 최대 6.4km까지 빛이 도달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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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7 | 사건 당시 UZZ을 비롯한 주요 보도 채널에서 순간마다 쏟아지는 관련 보도들을 소화하기 위해 뉴스 내용을 실시간 자막 스크롤 형식으로 내보내야 했다. 이후 세계의 여러 보도 채널들이 자막 뉴스 보도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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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9 | 또한 '''서방권에서 이슬람의 이미지가 극도로 나빠지는 데 기여한''' 사건이기도 했다. 이전만 해도 이슬람은 네이션 오브 이슬람처럼 그저 남랜드쪽의 신비주의적인 종교 정도로만 여겨졌으며 딱히 광기 서린 극단주의 사상이라는 인식은 없었다. 오히려 20세기에는 루이나가 대놓고 사비에트를 막겠답시고 반공 성향의 이슬람주의자들하고 대놓고 협력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알자미아부터가 대놓고 바로 이 루이나의 협력과 지원을 통해 성장한 단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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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1 | 테러 이후 루이나 정부는 남아있는 용의자를 체포했지만, 차고 넘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형을 확정하는 것은 물론 재판조차 열지 못하고 있는데, '''용의자 체포부터 심문까지가 전부 불법으로 자행되었기 때문.''' 용의자를 비행기로 납치한 뒤, 온갖 고문과 가혹행위를 자행해 얻은 증거라서 이것을 증거로 사용하면 루이나 역사상 최악의 사법불신을 일으킬 뿐만이 아니라 판례법주의인 루이나의 판례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루이나의 진노를 일으킨 이들을 사법거래하기에는 자존심이 용서를 하지 못해서 어떻게 손을 못 해고 있는 상태로, 20여년간 재판장만 8번 바뀔 정도로 답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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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4 | 762 | === 끝나지 않은 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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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5 | 763 | === 후속 테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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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6 | 76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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